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14

고린도후서,
약함을
자랑한 편지

광주리 타고 도망친 이야기까지 털어놓은
바울의 가장 솔직한 편지

고린도후서 1–13장
여는 글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속마음이 많이 드러나는 편지예요. 눈물로 편지를 썼다고 하고,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전도의 문이 열렸는데도 떠났다고 하고,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거절당했다고도 해요.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두고 "편지는 무게 있는데 직접 보면 약하고 말도 시원찮다"(10:10)고 수군거린 말까지 그대로 옮겨 적어요. 😄

그런데 그 솔직함 속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모세의 얼굴에 뿔이 난 사연, 로마 개선 행렬의 향 냄새, 천막 만드는 사람이 말하는 "장막 집", 영어 단어 "hilarious"의 뿌리, 그리고 성벽을 내려간 광주리까지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예요(13:4).

1부

고린도후서는 어떤 책일까?

눈물과 위로 사이에서 쓴 바울의 편지

고린도전서를 보낸 뒤에도 고린도교회와의 관계는 쉽지 않았어요. 바울은 "근심 중에" 교회를 한 번 더 찾아갔고(2:1), 돌아와서는 "많은 눈물로" 편지를 썼어요(2:4). 그리고 그 편지를 들고 간 디도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죠.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마음이 편치 않아 마게도냐로 건너갔고(2:12-13), 거기서 마침내 디도를 만나 교회가 돌이켰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어요(7:6-7). 그 안도감 속에서 마게도냐에서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예요. 대략 주후 55–56년쯤이에요.

편지 사이의 편지고린도전서 이전의 편지(고전 5:9), 고린도전서, 그리고 "눈물의 편지"(고후 2:4)까지. 바울은 고린도에 적어도 네 번 편지를 보냈어요. 우리에게는 그중 두 편이 남아 있어요.
바울의 고난 이력서11장 23–28절에는 매 맞고,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고, 굶주리고 추웠던 일들이 줄줄이 나와요. 사도행전에도 나오지 않는 고난이 여럿이에요.

※ 10–13장은 앞부분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서, 원래 따로 보낸 편지였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반대로 한 편지로 보는 학자들도 많아요.

고린도후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위로로 시작하는 편지
1장 3–7절, 다섯 절 안에 "위로"라는 말이 헬라어로 열 번 가까이 나와요.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세요(1:3).
2
새 언약의 일꾼
돌판에 쓴 옛 언약과 마음에 쓴 새 언약을 나란히 놓아요(3:3-6).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에요(3:6).
3
헌금 이야기만 두 장
8–9장은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를 돕는 연보 이야기예요. 성경에서 헌금을 가장 길게 다룬 곳이에요.
4
"약함"과 "자랑"이 짝을 이루다
남들은 힘과 말솜씨를 자랑할 때, 바울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 해요. 이 편지의 가장 큰 뒤집기예요.
5
예배를 마치는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13). 오늘 예배 끝에 듣는 축도가 이 편지의 마지막 인사예요.

고린도후서의 중심에는 주님이 바울에게 하신 한 마디가 있어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12:9). 보배는 질그릇 안에 담겨야 빛나요. 그래야 그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이 드러나니까요(4:7).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개선 행렬부터 셋째 하늘까지, 바울이 털어놓은 이야기들

1

로마 개선 행렬에서
풍기는 두 가지 냄새

고린도후서 2:14-17

로마 장군이 큰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개선 행렬이 열렸어요. 장군이 전차를 타고 로마 시내를 행진하고, 뒤로는 전리품과 사로잡힌 적국의 포로들이 줄지어 따라갔어요. 길가에서는 향을 피워 온 도시에 향냄새가 가득했다고 해요.

바울은 이 장면을 떠올리며 말해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2:14). 여기서 "이기게 하시고"라는 말은 헬라어로 개선 행렬로 이끌고 가다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재밌는 건 바울이 서 있는 자리예요. 전차 위의 장군이 아니라 그 뒤를 따르는 사로잡힌 사람의 자리예요. 원래 하나님과 싸우던 사울이,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기쁘게 행렬을 따라가는 거예요.

그 행렬에서 풍기는 향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긴 쪽에게는 승리의 향기였지만, 끌려가는 포로에게는 곧 닥칠 처형을 알리는 냄새였거든요.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말해요.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2:16). 같은 복음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거슬리는 냄새가 돼요. 그러니 바울은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어요.

※ 2:14의 단어를 로마 개선 행렬로 읽는 해석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바울을 "포로"로 보는지 "행렬에 참여한 사람"으로 보는지는 학자마다 조금씩 달라요.

돌아보기
내가 이긴 장군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임을 기억하며, 그분의 향기를 풍기는 하루를 삽니다.
2

모세의 얼굴에
뿔이 난 사연

고린도후서 3:7-18 · 출애굽기 34:29-35 · 마태복음 17:2
모세 (출 34장)
빛나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어요. 그 빛은 점점 사라지는 빛이었어요.
VS
우리 (고후 3장)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해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오자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어요(출 34:29). 그런데 이 "광채가 나다"라는 히브리어는 "뿔"이라는 단어와 글자가 같아요. 그래서 4세기의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로 번역할 때 이 구절을 "모세의 얼굴에 뿔이 났다"는 뜻으로 옮겼어요. 그 결과 중세의 많은 그림과 조각에서 모세는 머리에 뿔 두 개가 달린 모습이 됐어요.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남긴 유명한 모세상에도 뿔이 있어요. 😄

바울은 이 사건에 숨은 의미를 짚어요. 모세가 수건을 쓴 건 얼굴의 빛이 사라져 가는 걸 이스라엘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요(3:13). 옛 언약의 영광은 진짜였지만 사라져 가는 영광이었어요. 그리고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3:16).

그러고는 놀라운 말을 해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3:18). 이 "변화하다"는 예수님이 산 위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마 17:2) 하실 때와 같은 단어예요. 모세의 얼굴에서 사라지던 빛이, 이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서 점점 더 밝아진다는 거예요.

돌아보기
가려진 수건을 벗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을 닮아 가도록 조금씩 빚어 가시는 성령님을 신뢰합니다.
3

깨지기 쉬운
질그릇 속의 보배

고린도후서 4:6-12 · 창세기 1:3 · 사사기 7:16-20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4:6). 바울은 창세기 첫 장,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신 장면을 가져와요. 천지를 처음 밝히신 그 하나님이 이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영광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 절이 이어져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4:7). 질그릇은 흙으로 빚어 구운, 흔하고 싸고 잘 깨지는 그릇이에요. 그 시대 등잔도 대개 흙으로 구운 작은 그릇이었어요. 싸구려 흙 등잔 안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딱 맞아요. 사람들이 보는 건 볼품없는 그릇이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건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그래서 바울은 깨질 듯한 삶을 네 쌍의 말로 그려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4:8-9). 금이 가고 이가 빠져도 그릇은 버려지지 않아요. 오히려 금 간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와요.

구약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어요. 기드온의 삼백 용사는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고 있다가, 항아리를 깨뜨리자 불빛이 드러났어요(삿 7:16, 20). 전쟁은 용사들의 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죠.

※ 질그릇을 흙 등잔으로 읽는 것과 기드온의 항아리와 연결하는 것은 여러 설교자와 주석가들의 해석이에요. 본문이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요.

돌아보기
깨지고 금 간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틈으로 그리스도의 빛이 새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

천막 만드는 사람이 말한
"장막 집"

고린도후서 5:1-5, 17 · 사도행전 18:1-3 · 요한복음 1:14

바울이 처음 고린도에 왔을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 머물며 함께 일했어요.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 18:3).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손수 천막을 지어 생활비를 벌었어요.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은 천막 장인이기도 했던 거예요.

그런 바울이 우리 몸을 이렇게 불러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5:1). 천막을 만드는 사람은 천막이 얼마나 쉽게 해지고 찢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비바람을 맞으면 줄이 느슨해지고, 오래 쓰면 천이 삭아요. 우리 몸도 그래요. 😄 나이 들수록 여기저기 삐걱거리니까요.

그런데 성경에는 이 "장막"과 이어진 아름다운 말씀이 있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이 "거하다"는 원래 "장막을 치다"라는 뜻이에요. 하늘의 영원한 집에 계시던 분이 우리처럼 해지는 장막 집에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5:21) 십자가를 지셨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무너지는 장막 너머의 영원한 집을 바라볼 수 있어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5:17).

※ 바울의 생업 "천막 만드는 일"이 천을 짜는 일이었는지,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는지는 의견이 나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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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고 약해지는 몸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예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집을 소망합니다.
5

만나를 거두던
광야의 셈법

고린도후서 8:1-15 · 9:6-15 · 출애굽기 16:18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롬 15:26) 돕기 위해 이방 교회들에게서 연보를 모으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장 먼저 마음을 연 곳은 넉넉한 고린도가 아니라 가난한 마게도냐 교회들이었어요.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8:2). 가난이 풍성함을 낳았다니, 말이 안 되는 셈법이에요.

바울은 그 셈법의 뿌리를 보여 줘요.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8:9). 드림은 예수님을 따라 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광야의 만나를 떠올려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8:15, 출 16:18). 광야에서는 욕심껏 거둬도 남지 않았고, 조금 거둬도 모자라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날마다 필요만큼 채우시는 공동체였던 거예요.

그리고 이 유명한 구절이 나와요.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9:7). "즐겨"라는 헬라어가 바로 영어 단어 hilarious의 뿌리예요. 😄 하나님은 억지로 쥐어짜는 사람이 아니라, 웃으며 기꺼이 내놓는 사람을 기뻐하세요. 두 장에 걸친 헌금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나요.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9:15).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예수님을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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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하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가난해지셨음을 기억하며,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나눕니다.
6

성벽을 제일 먼저
내려온 사람

고린도후서 11:21-33 · 신명기 25:3 · 사도행전 9:23-25
로마의 자랑
적의 성벽에 제일 먼저 올라간 병사에게 "성벽관"을 씌워 줬어요.
VS
바울의 자랑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제일 먼저 내려왔어요.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말솜씨와 경력을 자랑하며 바울을 깎아내렸어요. 바울은 "어리석은 말"이라며 자기도 한번 자랑을 해 보겠다고 해요. 그런데 그가 늘어놓은 목록은 이래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11:24-25).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에도 사연이 있어요. 율법은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신 25:3)라고 했어요. 혹시 세다가 틀려서 마흔을 넘길까 봐, 유대인들은 서른아홉 대에서 멈췄어요. 자비를 위한 규칙이었지만, 바울은 그 서른아홉 대를 다섯 번 맞았어요.

그리고 자랑 목록의 마지막을 이 장면으로 장식해요.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11:32-33). 로마 군대에서는 적의 성벽을 가장 먼저 기어오른 용사에게 성벽 모양의 관을 씌워 주는 큰 영예가 있었어요. 그런데 바울은 성벽을 제일 먼저 내려온 이야기를, 그것도 바구니에 담겨 밤에 몰래 도망친 이야기를 자랑이라고 해요.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

※ 아레다 왕은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4세(재위 주전 9년–주후 40년)로 봐요. 바울이 로마의 "성벽관"을 비틀어 말했다는 것은 일부 학자들의 해석이에요. 서른아홉 대의 규칙은 유대 문헌 『미쉬나』에 나와요.

돌아보기
남들이 자랑하는 힘과 성공 대신, 광주리에 담겨 내려온 약한 순간에도 나를 건지신 주님을 자랑합니다.
7

세 번 빌었는데
"아니"라고 하신 응답

고린도후서 12:1-10 · 마태복음 26:39-44
겟세마네의 예수님
잔을 옮겨 달라고 세 번 기도하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어요.
VS
바울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 간구했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답을 들었어요.

12장에서 바울은 이상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12:2). 누구 이야기인가 했더니, 읽어 보면 바로 바울 자신이에요. 😄 자랑하기가 너무 쑥스러워서 남 이야기하듯 한 거예요. 게다가 거기서 들은 것은 "말할 수 없는 말"이라며 한 마디도 풀어놓지 않아요(12:4).

대신 그가 길게 말하는 건 그 뒤에 받은 육체의 가시예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12:7). 바울은 이것이 떠나가게 해 달라고 세 번 기도했어요(12:8).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세 번 기도하셨던 것처럼요. 그런데 대답은 "아니"였어요.

대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12:9). 가시를 뽑아 주시는 대신, 가시 박힌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바울의 기도는 불평에서 고백으로 바뀌어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12:10). 예수님이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신 것처럼(13:4)요.

※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아요. 눈병(갈 4:15, 6:11 참고), 반복되던 병, 끈질긴 반대자들 등 여러 추측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내 기도에 "아니"라고 답하실 때에도, 그 약함 속에 머무시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게 족함을 고백합니다.
맺는 글
약함을 감추지 않은 사도,
약함 속에 오신 그리스도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자기를 멋지게 포장하지 않아요. 눈물로 쓴 편지, 불안해서 떠난 드로아, 서른아홉 대의 매, 바구니에 담긴 도망, 뽑히지 않은 가시까지 다 털어놓아요. 세상은 강한 사람을 따라가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 약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말해요.

그건 바울이 약함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에요. 그가 따르는 주님이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에요(13:4). 그래서 질그릇 같은 우리도, 해지는 장막 같은 우리도 낙심하지 않아요. 보배는 질그릇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니까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12:9)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